
티벳에 가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티벳은 고사하고 해외라고는 푸켓밖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해외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지요. 겨우 있는거라고는 터키에 대한 동경정도일까요?
해외에 나가보지 못해서인지 자꾸만 해외 기행 책자들을 집어들게 됩니다. 이렇게라도 해외에 못 간 한을 푸는 것인지... 언젠가는 이러다가 훌쩍 다 정리하고 어딘가의 오지로 떠나버릴지도 모르지만, 제 카드와 방세와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먹고 마시고 놀 수 있는 이 한국땅을 벗어나지 평생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지낼수록 해외의 알지 못하는 땅에 대한 동경은 커져만 갑니다.
그런만큼 티벳에 대한 제 동경과 상상의 나래도 점점 커지고 제게 티벳이라는 곳은 목가적인 황토빛과 신비로운 무지개빛으로 채색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상상 속 티벳은 무슨 색깔입니까?
제게는 그저 신비로운 나라, 고산지역에 있고, 불교국가이고 세계의 양심이라는 달라이라마가 있는 나라. 그정도입니다. 수식어를 보태자면 한이 없지만, 투명한 샴페인색깔 정도로 제 생각속의 티벳이라는 나라는 정리됩니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배트맨이 수련을 쌓는 곳이 티벳이었던 것 같고(혹시 아닌가요? 제 기억엔 꼭 그곳이 티벳인 것만 같았는데) 또 아주 오래전에 아빠와 함께 빌려 보았던 B급 미국 무술영화들 중 몇몇 개가 동양의 신비로운 무술을 소개하면서 티벳이 라마승들을 비추기도 했습니다. 마치 서양인들이 흔히 말하는 엘도라도 정도의 느낌이랄까.. 뭐 그랬습니다.
이를테면 티벳이란 곳은
1. 동양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한 비밀의 나라
2. 무술과 고행, 수련의 대명사
3. 어린 소년들이 라마승이 되는 것을 목표로 어렸을때부터 고행과 수련을 쌓는 나라
4. 태어날 적부터 점지된 달라이 라마를 찾기 위한 은밀한 의식이 진행되는 그런 나라
정도지요.
얼마전 중국 정부에 대한 티벳의 독립운동이 있었지요?
전 그런 시위같은건 상상도 못했습니다. 제 머릿속에 티벳은 그저 하나의 신비롭고 평화로운 고산"국가"였으니까요.
그곳이 중국의 자치구로 전락한 폐퇴한 지역이라는 것도 그런 일이 있고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좀 부끄러운 일이죠.
중국은 티벳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이 책을 집어들면서 제 의문의 시작은 이거였습니다.
티벳 독립 소요로 보자면 중국 사람에게 있어서 티벳은 일제강점기의 일본인이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시각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상상과 함께, 중국방송인이 티벳에 가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하는 궁금증 말입니다.
우리가 보는 티벳과는 아무래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갖게 되었습니다.

티벳의 현실은 이렇습니다.
아마 저자인 쑨수윈도 그랬나 봅니다. 중국내 자치구지만 별로 왕래할 일도 없고, 저자로서도 첫 방문이니 티벳 기행책들을 보며 상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신비의 색체로 덧칠된 티벳을 기대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사진의 책 내용은 저자가 읽은 어떤 티벳 기행문의 내용입니다. 티벳의 현실이었습니다.
책을 뒤로 넘기기도 전에 저는 아주 약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오지니까 조금 삶이 척박하긴 할거야.. 라는 생각은 막연히 갖고 있었지만 주변지역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오히려 더 척박하고 궁핍하며 지독한 침묵의 땅이라는 얘기.
티벳은 아직도 그런가요?
저는 작가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은 책을 계속 읽어나가면서 풀어나갈 수 있겠더군요.

2006년에서 2007년까지, 아주 최근의 티벳에서의 삶
작가는 티벳의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2006년 6월부터 1년간 티벳의 대표적인 서민 가정과 함께 지냅니다.
정말 아주 최근이네요. 이정도면 티벳의 현실을 조명하기에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작가는 중화사상을 교육받은 중국의 엘리트입니다. 집안은 공산주의 사상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어느정도 의식은 변했겠지만 티벳인들과의 첫 만남은 엘리트 방송작가로서의 객관적인 시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촬영대상이 될 인물들을 선정하고, 촬영에 필요한 장면을 요구하고, 관조하듯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가족의 죽음에 대해 장례식을 촬영할 계획을 짜고, 외지에서 온 사람이 티벳인들에 섞여들어 사는 것에 대해 왜 그렇게 사느냐고 되묻습니다.
작가는 중국인으로서 알고 있었던 티벳에 대한 무수한 오해를 쏟아냅니다.
티벳 불고가 중국인들에게 그토록 왜곡되어 있었던 것인지 저도 처음 알았는데, 낭비와 게으름, 인민착취 등으로 묘사되며, 마치 우리가 부패한 대기업을 비난하는 것과 같은 내용의 오해들이더군요.
릭진과 체텐 가족은 그런 그에게 여유로움과 이해를 보여주었습니다. 아마도 그에 대한 감정적 동조는 그들의 대화 하나하나를 읽어야 하겠지만, 중국인들과의 비교를 통해 이들이 오히려 중국이 아닌 완전히 별개의 문화를 지닌 다른 나라의 사람임을 더욱 느끼게 됩니다. (어쩌면 극적인 효과를 위해 더욱 중국인을 대비시켜 묘사했을지도 모르지요. 분명 중국 내에도 여유와 넓은 도량을 지닌 사람도 많을테니까요)

티벳의 남과 여
돈단과 체텐, 로가는 한집에 살면서 아내를 공유합니다. "그들"의 아내인 양드론. 말이 없고 조용히 감내하며 삶을 삶대로 살아갑니다. 일처다부제라는 말이 주는 어감상 굉장히 여성중심일 것 같지만 뭐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에서 그게 자연스러운 방식이기에 택했을 뿐입니다.
척박한 고산지대에서 삶을 지탱하려면 아무래도 가정일보다는 바깥일이 많을테고, 양드론의 말에 의하면 남편이 많은 것이 부의 척도가 된다. 조금이라도 더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모습에서 처가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정서적으로 가족을 연대하게 하고 집안의 온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았습니다.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지만 티벳에서의 여성의 지위는 굉장히 높다고 합니다. (이쯤되면 나도 티벳가서 살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흠흠) 재산이나 혼인에 관한 법률적 권리는 물론이고 외부 활동에 대해서도 자유롭다고 합니다. 혹시나 해서 티벳의 인구 성비를 찾아보았는데, 딱히 여성이 극히 부족하지는 않더군요. 결국 원인은 책에서도 서술하듯이 티벳의 강력한 신앙심의 원천인 많은 신들중에 여성신이 많아서라고 합니다.
완벽히 불교국가인줄로만 알았던, 그래서 부처와 달라이라마만을 믿고 따르는줄 알았던 그들에게도 토테미즘에서 기인한 다신을 섬기는 풍습이 강하게 남아있다고 합니다. 정말 읽을수록 티벳이라는 곳이 점점 가깝게 다가오더군요.


티벳인과 가족처럼 지낸다는 것
이쯤해서 스포일링은 그만할까 합니다. 책이 주는 소소한 재미와 담백한 삶의 서술은 이렇게 요약처럼 글로 뿌려낸다고 전해지는 것이 아닐테고, 티벳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야 오히려 이 책에 대한 흥미도 높아질테니까요.저자는 체텐가족과 계속 촬영하면서 점점 가족에 융화됩니다. 정말 카메라의 시선처럼 객관적인 관조로 시작했던 그의 문체는 조금씩 조금씩 그들의 삶을 전하고, 종국에는 그들의 삶에 대한 걱정과 관심으로 마감됩니다.
릭진이 아팠을 때 진정으로 걱정하는 쑨수윈의 모습에서 아.. 오지 여행이란 건 이런 게 정말 진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반적인 여행자로서는 도저히 경험하기 힘든 일년간의 체험. 아니 그곳에서의 점점 녹아드는 삶은 책의 제목처럼 바로 이 생에서 느끼고, 그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얀 속살이 아주 담백합니다.
이 책은 그렇습니다.
황톳빛으로 채색된, 우리가 알고 있던 티벳이라는 신비주의의 커튼을 한겹 벗겨내고 이 책의 속표지처럼 담백한 백색의 그들의 삶을 숨김없이 전달합니다.
쑨쑤윈은 자꾸만 뒤를 돌아봅니다. 중국은 이런데 티벳은 왜 이런걸까... 중국에서 이렇게 하라는데 왜 그들은 하지 않지? 우리가 바라보는 티벳의 신비로움과는 별개로, 쑨쑤윈이 중국인으로서의 티벳에 대한 고정관념과 오해를 벗어가는 모습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더불어 티벳에 대한 여러 새로운 사실들도 알게 되어 티벳은 여행이 아니라 "살러" 가기에 더 적당한 곳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어느곳에서의 삶이 가치의 경중을 따질 수 있겠습니까마는, 티벳에서의 삶은 조금 불편하고 척박하지만 분명 그 마이너스만큼을 보충할 수 있는 뻑뻑한 산양우유만큼이나 가슴에 차오르는 무언가가 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직접적으로 티벳문화는 이래요! 티벳은 이런곳이예요! 하고 알려주지 않아도, 체텐과 릭진, 로가, 양드론이 살아가고 있는 그나마 티벳의 중심지라는 곳에서의 삶의 대화들은 그들의 마음 씀씀이를 충분히 이해시키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평범한 기행문도 아니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채로운 사진이 박혀 있는 여행기도 아닌 어중간한 형태의 이 견문록은 그 어떤 여행서보다 티벳에 대한 마음 그득한 뿌듯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의 평범한 티벳에서의 삶을 지키기 위해 중국과의 소요도 빨리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저자가 중국인이어서 더욱 비교되던 그들의 삶을 통해 티벳의 마음자세는 분명 중국과는 다르지만 함께 공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중국인의 세계중심사상을 조금만 양보한다면... 아니 중국에서 티벳을 비방하고 오해를 양산하는 사람들이 저자처럼 티벳인의 가족과 조금만 같이 살아본다면 사태가 아주 부드럽게 해결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도 해 봅니다.
동양기행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서아시아지역을 탐방한 일본의 사진작가의 책인데, 이 책과 어느정도 비슷한 느낌도 드네요. 특히 티벳과 마찬가지로 신비의 색채로 알려진 터키, 파키스탄 등지를 여행한 부분들이죠. 같이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역시 여행서라는 것은 단기간 여러곳을 방문해서 화려한 문화를 소개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것들보다는 이런 진솔한 삶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들이 훨씬 더 마음속에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분명 "한번쯤 가보고 싶은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과 부대끼며 좀 살아보고 싶은 나라"는 다른 느낌이니까요.








